현실이냐, 영화냐

‘아메리카의 밤(Day for Night, 1973)은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이 만든 실험적 영화다. 영화 제목만 보더라도 영화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Day for Night’이란 밤 장면을 찍기 위해 낮에 카메라 렌즈에 필터를 끼워서 촬영하는 기법을 말한다. 즉, 영화적인 진실을 만들기 위해서 현실을 변형하는 것이다.

영화관에서 접하는 현실은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과장과 축약을 거친 후에 만들어진 영화적인 진실이다. 영화는 사실과 다른 허구다. 이 영화는 단순히 현실과 영화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차이를 넘어서기 위해서 만들어진 영화이고, 초월을 통해서 새로운 현실을 창조한다.

영화는 제2의 현실이라고 역설한다. 이들의 관계가 명확하게 표현된 것은 원제이다. 밤과 낮이라는 대립된 관계는 서로 보완적이다. 주로 낮은 일상적인 시간의 흐름이 지배한다. 반면에 밤은 공상적, 환상적인 시간이 도래하는 것이다. 이것을 유추하면 낮은 일상적인 시간이 흐르는 실제 현실을 뜻하고, 밤은 꿈을 꾸는 시간인 공상적, 환상적인 시간이 흐르는 영화적 현실의 또 다른 표현이다. 낮을 밤으로 바꾸는 것은 현실을 변형하여 영화를 만드는 근본적인 원리다.

이 영화는 자기 반영성을 드러내는 영화이다. 영화 속에서 찍는 영화는 ‘파멜라를 찾아서’이다. 중심 플롯은 며느리와 사랑에 빠진 시아버지가 아들에게 살해당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이들의 배역을 맡은 사람들과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배역을 맡은 사람에 따라서 그들의 의견이 다양하게 갈린다. 캐릭터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존재한다.

감독 역을 맡은 프랑수와 트뤼포의 나레이션은 전체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자신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정말 멋진 영화를 만들 거야. 좀더 잘 해야 하는데. 실수를 만회해야 하는데 라고 말한다. 즉, 영화 만들기의 어려움에 관한 자기표현이다.

성격과 환경이 다른 배우들을 챙겨야 하는 어려움, 제작자와 의견을 공유해야 하는 어려움, 제작 환경과 싸워야 하는 어려움이 순차적으로 제기된다. 어려움이 잘 표현된 것은 감독이 꾸는 꿈이다. 꿈속에서 정장 차림의 소년은 지팡이를 두드리며 길을 걷고 있다. 꿈 장면은 처음에 한꺼번에 보여주지 않고, 소년이 무엇을 하는지를 세 번에 걸쳐 나눠서 보여준다. 결국 소년이 한 일은 극장에서 개봉한 시민 케인의 스틸 사진을 훔쳐서 달아나는 것이다.

트뤼포가 생각하는 창작의 고통은 기존 영화에 대한 오마주로 표현된다. 이는 그가 주문한 책에서도 볼 수 있다. (루이 부뉘엘, 하워드 훅스, 알프레드 히치칵, 장 뤽 고다르, 쟝 비고) 이차적인 형태의 변형이 시작되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일차적인 변형은 현실을 영화로 변형하는 것이고, 이차적인 변형은 영화에서 영화로 변형을 뜻한다. 새로운 영화적인 현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지도에 선을 긋고 도로를 만드는 것이다. 거칠고 투박한 영화를 세련되게 다듬고 화장을 하는 것이 제2의 영화다.

‘파멜라를 찾아서’는 영화적 역사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면서도 자족적인 영화이다.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틀을 갖추고 있지 않다. 영화 제작이 진행되면서 그들 사이의 관계는 긴밀해지고, 때로는 소원해진다. 영화 제작이 진행되는 동안 그들의 관계는 필연적이지만, 제작이 끝나면 그 관계가 사라진다. 물론 개인적인 관계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영화에서 만들어진  관계는 끝나게 된다.

이들의 관계를 둘러싼 이야기가 이 영화의 중심플롯이다. 영화 속의 영화의 플롯은 이들이 관계를 맺기 위해 주어진 틀이다. 영화냐 삶이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다.

영화보다는 삶을 선택한 릴리안이 있는가 하면, 영화 속에서 의미를 찾은 알렉산이 있다. 이들의 삶은 영화를 찍는 과정에도 뒤섞이고 해체되는 운명을 맞는다. 영화에서 살해당한 알렉산이 실제 현실에서 교통사고로 죽고, 영화에서 배신을 당한 알퐁스가 실제의 연인 릴리안한테 배신을 당한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였지만 각자 나름의 현실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이들이 현실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을 보여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다. 이들의 잠재력은 영화를 완성시키는데 필연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고 방해가 되기도 한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복잡 미묘한 관계이다.

스테이시의 문제는 알코올 중독에다, 기억력 감퇴, 임신이다. 스테이시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영화 제작 과정을 늦추게 만든다. 대사를 외우지 못해서 여러 차례 NG를 내고 말았다. 하지만 스테이시는 쥴리가 슬픔에 젖었을 때 그녀를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스테이시의 문제점은 쥴리에게 위안으로 다가온다. 쥴리의 상처를 이해하고 감싸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바로 스테이시가 되는 것이다. 또한 알퐁스의 슬픔을 받아주고 도와줄 수 있는 인물로 쥴리도 같은 역할을 한다.

이들 모두가 관계를 맺는 것은 상처와 문제의식의 덕택이다. 특히 쥴리는 영화 제작의 초반부터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서 고통받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녀는 신경쇠약에 걸려 있어서 치료를 받고 정신적인 안정을 취하기 위해서 나중에 합류한다. 쥴리는 정신과 의사인 남편과 동행해서 촬영에 임한다. 그녀의 압도적인 아름다움과 정신적인 혼란은 영화 제작 전반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아슬아슬하게 영화를 제작하는 모습이 역력히 그려진다. 고양이 한 마리가 제대로 연기를 하지 못해 수십 컷을 다시 찍거나, 임신한 스테이시의 수영복 모습을 편집으로 가린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영화 제작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점이 영화를 만드는 창조적인 힘을 뜻한다.

알퐁스의 관심은 그의 애인 릴리안과의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는 릴리안과의 결혼을 꿈꾸며 그녀를 곁에 두려고 스크립터 직업을 구해주고 같은 방을 쓴다. 하지만 그의 과도한 집착에 릴리안은 혐오를 느끼며 그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스턴트맨과 도망친다. 알퐁스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파멜라를 찾아서’처럼 그의 애인을 빼앗기는 운명에 처한다.

영화 속 영화 ‘파멜라를 찾아서’에서 그는 자신의 애인을 뺏어간 아버지를 살해한다. 그가 애인을 되찾고 싶은 욕구가 영화적으로 표현되었고, 영화 속의 연인인 쥴리와 하룻밤을 지낸다. 알퐁스는 영화를 통해서 자신의 개인적 문제를 상징적으로 해결한다. 감독은 창작의 고통을 꿈속의 소년의 시점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끊임없이 마주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꿈을 꾼다. 꿈이라는 상징적인 기제가 영화로 표현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영화는 결국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창조된 현실이다. 영화가 창조된 초기에는 현실적인 힘을 가지지 못하였지만, 창작과 더불어 현실적인 영향력을 가진 순간부터는 현실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알렉스의 죽음도 영화적인 죽음이 개입하여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영화와 현실 사이에 생긴 팽팽한 긴장감이 삶을 지속시키는 힘이 된다. 영화가 현실 전체를 감당할 수는 없지만, 현실의 한 부분으로 현실을 굴러가게 만드는 것은 확실하다. 즉, 현실과 영화는 공존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낮이면서 동시에 밤을 위한 낮이 되는 것은 현실과 영화적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긴장감이면서 서로를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낮은 단순한 낮이 아니며, 밤으로도 보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똑같은 현실이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에게는 즐거운 날이 다른 사람에게는 가장 슬픈 날이 될 수 있다. 이런 차이가 바로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만드는 궁극적인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