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로 간 뉴요커

드디어 HBO 시리즈 ‘섹스 앤 더 시티’의 결말을 봤다. 이 드라마는 문제가 많은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성을 소재로 한 연애를 솔직히 다룬 재미있는 드라마임을 부정할 수 없다.

억지로 캐리와 미스터 빅을 맺어주려고 한 결말은 무척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도 미란다, 사만다, 샬롯의 삶은 멋지게 마무리했다. 사실 캐리의 캐릭터는 너무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아서 별로 공감이 안 되었다. 그렇지만 미국 친구들이랑 이야기 하다 보면, 캐리가 가장 인기 있고, 자기랑 비슷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다. 어쩌면 가장 전형적인 미국인의 연애 가치관을 표현하고 있는 캐릭터일지도 모르겠다.

결말보다 더 재미있는 설정은 캐리가 페트로프스키를 따라서 파리가 간 거였다. 다분히 뉴요커의 입장에 바라본 파리라서 좀 건조하게 그려지긴 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인간미가 느껴졌고, 덜 삭막해 보였다. 캐리는 자신의 남자친구를 제외하면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이방인이었다. 그게 유학 나와 있는 나의 처지와 비슷해서 좀 동정도 갔다. 하지만 미국사람이냐고 묻는 사람에게 캐리는 자신은 ‘뉴요커’라고 말하는 편협한 사고방식에서 좀 짜증이 났다.

캐리는 또 브루클린으로 이사가하는 미란다를 이해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뉴욕 중에서도 ‘맨해튼’이 최고인 줄 안다.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로스앤젤레스 사람들이 백치처럼 그려지기도 했다. 캐리가 파리지앤느의 패션감각에 맞추기 위해서 의상에 무지 신경 쓴 티가 많이 난다. 그래도 파리사람들이 뉴욕사람들보다 옷을 잘 입는 건 확실하다.

맨해튼 밖에 모르던 캐리가 파리에 가서 무시당하는 모습이 조금은 통쾌했다. 그건 미국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일종의 복수심리였다. 미국사람들은 유럽에 대한 자존심을 내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문화적 열등감에 사로 잡혀있는 듯하다. 유럽에 대해 말하면 늘 유럽을 고리타분하고 변화를 모르는 고집쟁이로 그리지만, 문화적 전통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는 별로 말이 없다.

캐리는 결국 파리 생활에서 적응도 못 하고 다시 뉴욕의 일상으로 돌아온다. 미란다의 인터뷰 기사 중에서 미란다의 딸이 결말을 보고 무척 화가 났다고 한다. 드라마 내내 여자들의 우정에 관해서 이야기하다가 우정을 버리고 사랑을 찾아간 캐리를 이해 못 하겠다고 했다. 나도 그 부분이 영 마음에 걸렸다. 물론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결말이 엉성했던 건 사실이다. 아무튼, 친구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그곳이 내게는 참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