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태권브이의 감동

국민학교 시절 주제가만 들어도 가슴을 설레게 하던 만화영화가 바로 ‘로보트 태권브이’다. 얼마 전에 인사동에 있는 ‘토토의 오래된 물건’이라는 가게에서 태권 브이를 우연히 재회하게 되었다. 그리고 DVD도 만들고, 원판을 찾아서 복원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김청기 감독의 인터뷰 기사도 읽어보았다. 창작 당시의 고민이 잔뜩 묻어나는 인터뷰였다.

다시 한번 영화를 찾아서 봤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절 그런 느낌은 하나도 안 들었다. 다분히 민족주의와 반공 이데올로기가 잘 녹아있는 영화라는 생각만 들었다. 나쁜 박사의 이름도 카프 박사, 엥겔 박사인걸 보면, 카프 문학과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그대로 빌려온 것 같다. 당시 어린이 신문의 기사를 보면, 재미있는 의견이 많다. “로보트 태권브이가 공산당을 때려잡아 주세요”부류의 어린이 희망이 간절히 담겨 있다. “김 박사 같은 멋진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장래희망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당시에 왜 그렇게 로봇 만화들이 대중문화를 점령했는지 의문이다. 과학 기술로 부국강병을 이루는 꿈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려고 했던 걸까? 지구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로봇이 만들어졌던 시대에 대한 향수가 있다. 그 시절 친구들 사이의 화젯거리 가운데 마징가와 로보트 태권브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였다. 일본과 한국의 대리전으로 로봇이 필요했었던 것일까?

나는 왜 그렇게 열광했었던가? 우리 손으로 로봇을 만들 수 있다는 뿌듯한 자립의식 때문인가. 그러고보면 당시 ‘새소년’인지 ‘어깨동무’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린이 잡지에 우리 손으로 만든 한국 최초의 전투기 ‘제공호’에 대한 기사가 대대적으로 다뤄지기도 했다. 국제 과학자 대회에서 세계를 호령하던 멋진 박사의 하얀 까운이 멋져보였는지. 그것도 아니면 번쩍이는 광채의 로봇 자체에 열광했는지 모를 일이다.

노래와 함께 기억되었던 근사했던 이야기가 이제는 반공 이데올로기로 느껴지는 순간, 뭔가에 속은 기분이 든다. 이제는 국민학교가 아닌 초등학교로 바뀌었지만, 그 당시에는 학교에 가는 건 ‘국민’으로 태어나는 그런 과정이었나 보다. 아! 그 시절 태권브이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