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자라듯 커가는 아이

영화 ‘이웃집 토토로’의 세계에는 단순히 어린아이의 꿈과 희망만 담겨 있지는 않다. 어른의 시각에서 바라본 어린 시절의 추억담도 내재하여 있다. 어린아이와 어른이 어우러진 공간에 대한 짧은 기행담이다. 따라서 토토로가 보여주는 세계는 현대 일본의 도시를 벗어나 있다. 현대를 떠나 시간에 역행하는 시골의 작은 마을을 중심으로 토토로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토토로가 사는 마을은 이미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는 비주류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 생활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사라지고 있는 가치들에 대한 예우이며, 현대에 다시 그것들을 불러들이는 주문과 같다.

작은 마을에 일어나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토토로를 중심으로 부활한다. 그 부활의 중심에는 어린 두 소녀가 있다. 역으로 생각하면 이들은 그만큼 사회의 주류와는 전혀 다른 부류에 속해 있었다. 남성 중심, 도시 중심, 어른 중심, 이성 중심의 사회에서 소외된 두 소녀가 이 영화의 중심인물이다. 사회적으로 약자인 메이와 사스키는 여성, 시골, 어린아이, 감정을 따라간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를 성취시켜주는 상징적인 존재가 바로 이웃의 토토로다.

사스키와 메이는 시골로 이사 와서 토토로를 만나서 자신들의 꿈을 말할 수 있게 된다. 두 소녀는 도시에서 성장했지만, 시골에서 살게 된 것에 무척 기뻐한다. 시골은 생명을 잉태하고 길러낸 자연을 상징한다. 특히 두 소녀에게 시골은 단순히 자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어머니를 뜻한다. 이미 두 소녀는 어머니를 현실 속에서 잃어버리고 있다. 어머니는 시치코크야마 병원에서 이름 모를 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마을은 그 결핍된 공간을 충실하게 메우면서 어머니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이 마을로 이사하게 된 것도 결핍된 존재를 찾아가는 당연한 귀결이다. 어머니를 대신한 마을로 들어선 두 소녀는 기쁨에 찬다. 두 소녀는 낡은 집에 들어서서 그 가치를 확인한다. 두 소녀는 먼지가 뽀얗게 앉은 방과 무너질 듯 걸려있는 기둥을 돌고 어두컴컴한 창고를 마구 열어본다. 그리고 두 소녀는 스스로 이 집을 도깨비 집이라고 이름 붙인다. 어머니가 마을과 도깨비집으로 대체된 곳에서 두 소녀는 어머니를 기다린다.

두 소녀의 꿈은 어머니의 병이 완쾌되어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이다. 어린 시절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는 압도적이다. 나이를 들면서 잃어버리는 가치들 가운데 중요한 것이 어머니이다. 토토로에서는 어머니의 가치에 대해서 들려주고 있다. 또한 토토로는 현대인에게 결핍된 고향과 어머니에 대해서 들려준다.

이 영화의 주도적인 감정은 몇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기다림, 공포, 환상으로 나눌 수 있다. 기다림과 공포는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환상으로 이어주고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환상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 방식으로 이해된다. 아이가 기다리고, 공포를 느끼고 환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아이가 세상 속에서 자신의 꿈을 키우고 이룩하는 길이 펼쳐진다.

첫째, 사스키와 메이는 늘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존재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아이의 주된 속성이다. 아이는 성장을 기다리고, 앞으로 펼쳐질 인생을 기다린다.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어떤 곳을 방문할까, 어떤 일을 하게 될까를 자연스레 기다리게 된다. 두 소녀는 이삿짐을 실은 용달차에서 새로운 집이 어떻게 생겼을까 그려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추측해본다. 또 어머니가 퇴원해서 집에 오는 날, 어머니와 함께 도깨비 집에서 살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영화 속에서 이들의 모든 기다림이 이뤄져 드러나지는 않는다. 어머니가 퇴원은 암시적으로만 비친다.

늘 같이 있는 인물 간의 기다림도 존재한다. 메이와 사스키는 퇴근하는 아버지를 맞으러 버스정류장에 간다. 메이는 학교에 간 언니 사스키를 기다리다 못해 할머니와 학교로 찾아간다. 아이에게 기다림은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메이의 기다림이 폭발해서 어머니를 찾아 병원으로 가게 된다. 메이는 스스로 감정을 다스릴 수 없는 만큼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다.

사스키도 역시 어머니의 건강이 걱정되어 메이에게 화를 내고, 울음을 터트리는 감정적 인물이다. 사스키는 사라진 메이에 대한 걱정으로 메이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찾지 못하게 되자 환상적인 정령인 토토로를 찾아간다. 또 두 소녀는 모두 토토로를 만나기를 기다린다. 메이가 꼬마 토토로를 쫓아서 가다가 결국 토토로가 누워 자는 곳에 도달한다. 메이의 간절한 기다림이 환상 속에서 성취된 것이다. 사스키도 비오는 날 동생을 업고 아버지를 맞으러 간 날에 토토로를 만난다. 이 지점은 아버지에 대한 기다림과 토토로에 대한 기다림이 겹쳐진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사람에 대한 기다림이 간절할수록 그 애정도 덩달아 커진다. 토토로가 전해준 도토리 열매는 기다림의 결정체이다. 나무 씨앗이 싹트기를 기다리는 과정은 지루하고, 참기 어렵다. 하지만 두 소녀는 기다림을 통해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과정을 알게 된다. 두 소녀는 어느 날 밤에 토토로가 나무를 싹 틔우기 위해서 정성을 다하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된다. 토토로의 그런 행위는 일종의 기다림의 외면화라고 할 수 있다. 그 의식에 같이 참여함으로써 소녀는 자신들의 꿈을 키우는 기다림을 실현하게 된다.

두 번째, 어린 시절은 공포가 어둠으로 표현되어 있다. 아이들의 호기심과 공포는 동전의 양면처럼 아이들을 세상으로 내모는 역할을 한다. 사스키와 메이는 도깨비집에 대한 호기심으로 접근하지만, 어둠 속의 스스와타리라는 먼지의 정령에 둘러싸인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 가족은 목욕하면서 두려운 공포를 이기려고 일부러 과장되게 웃는다. 공포는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다.

아이에게 닥치는 공포들은 대부분은 잘 알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애니메이션에서 캄캄하게 처리된 어둠과 넓은 공간에 놓인 조그만 아이는 시각적으로 왜소한 느낌을 준다. 세상은 넓고 아이가 봐야 할 것은 여전히 어둠 속에 놓인다. 상징적인 어둠은 바로 아이가 세상 속에서 커가기 위해서 겪어야 하는 성장통이다.

사스키는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을 발이 부르트도록 달린다. 이것은 아이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상징적인 어둠의 구역을 개척하는 행위이다. 낯선 존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이 토토로와 고양이 버스이다.

아이의 시각에서 공포는 두려움으로 끝나지 않고 익숙하고 편안한 감정으로 대치된다. 사스키와 메이는 토토로와 고양이 버스와 금방 친해지고 그들을 받아들인다. 공포는 아이를 짓누르는 압박이 아니라 새로움으로 이끄는 호기심의 다른 표현이다. 아이의 공포는 끔찍한 것을 제외한 호기심으로 쌓인 기대감이 된다.

세 번째, 토토로는 환상이 주조를 이루는 애니메이션이다. 토토로는 집 앞에 서 있는 큰 녹나무의 정령이다. 나무의 씨앗을 가지고 다니며, 비를 맞는 것을 즐긴다. 고양이 버스로 나타난 바람의 정령은 사스키와 메이를 태우고 어머니가 있는 병원으로 간다. 아이의 마음에 존재하는 문제 해결의 방법은 환상이다. 현실적으로 능력이 제한된 아이의 환상은 불만족의 현실을 대체한다.

사스키와 메이의 환상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된 모든 계층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어머니가 사라진 현대의 모든 인간 군상을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환상으로 토토로가 나타난다. 토토로는 어머니가 사라진 시대에 어머니를 대신해서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수호 정령으로 그려진다. 토토로는 아이들의 꿈에만 존재하는 유아적인 동화가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신화이다.

환상의 존재를 믿게 됨으로써 사람들은 희망을 품게 된다. 문제의 상징적인 해결을 통해서 현실적인 해결로 나아가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지친 영혼에서 활기 있는 영혼으로의 승화를 위해서 토토로는 끊임없이 살아날 것이다. 환상을 현실을 더욱 풍요롭고, 다양한 모습으로 가꾼다.

현대에 결여된 중요한 가치인 기다림, 공포, 환상은 현실 도피적인 감정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하지만 이들의 가치를 통해서 현실참여적인 힘을 기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긍정적인 가치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마음속에는 이미 완성된 모습이 내재하여 있다.

기다림을 통해서 가치가 숙성된다. 공포와 환상은 현실에서 거리를 두는 행위이다. 그 거리감은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거리가 아니라, 현실로 되돌아가기 위한 거리감은 객관적 자아를 의미한다. 내가 머무르고 붙어 있는 땅을 벗어나 환상으로 이동하는 마음은 현실을 치유하려는 방법이다.

‘이웃집 토토로’는 아이들이 성장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어른이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이야기이다. 어른들의 기다림은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고향을 바라보는 것은 잃어버린 가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가치 상실에서 가치 추구로 나아가기 위해서 겪어야 할 통과제의의 세계가 이 영화를 중심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