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을 경계하는 게임

영화 ‘쥬만지’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게임에는 보상과 처벌이라는 양면이 있는데, 왜 쥬만지에는 처벌만 있을까? 주사위를 던질 때마다 미지의 동물이 튀어나와 게임하는 사람을 괴롭힌다. 재미도 없고 고통만 있는 게임을 왜 해야 하는 걸까? 물론 영화는 가족애를 살리기 위해서 그런 희생이 필요했다고 마지막에 강변한다. 미국에서 이런 보드게임은 가족들이 모이는 추수감사절이나 연말을 겨냥해서 대대적으로 광고한다. 가족과 보드게임을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라고 ‘쥬만지’가 다시 확인해줬다.

보드 게임 가운데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건 뭐니 뭐니 해도 ‘모노폴리’다. 모노폴리도 쥬만지처럼 독점의 고통을 기초로 만들어진 게임이었다. 모노폴리는 1935년에 만들어져 7억5천만 개 넘게 팔려 나갔다. 다양한 대중문화의 아이콘과 결합해서, 심슨 모노폴리, 반지의 제왕 모노폴리, 해리포터 모노폴리 등 헤아릴 수 없게 재생되고 있다. 심지어 영국 런던에는 ‘모노폴리 펍 크롤’이라는 술집도 생겨났다고 한다.

미국 사람들은 알록달록한 장난감 같이 생긴 캐나다의 돈을 모노폴리 돈이라고 가끔 놀리기도 한다. 심지어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 ‘잃어버린 탄광’에서 포와르와 헤이스팅스 경감이 에피소드 내내 모노폴리를 즐기는 장면도 나온다고 한다.

그 이름도 수상한 모노폴리, 다시 말해서, ‘독점’ 게임이 과연 어떻게 생겨났는지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봤다. 모노폴리의 역사는 190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리지 메기가 정치경제학자 헨리 조지의 사상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려고 ‘건물주 게임’을 개발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헨리 조지는 19세기 후반 뉴욕을 방문했다가 가난한 사람들의 실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산업화가 발전한 뉴욕 같은 도시의 노동자들이 캘리포니아 같은 덜 발전한 지역의 노동자들보다 못사는 현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런 역설적 상황에 자극을 받은 헨리는 1879년 ‘진보와 빈곤’이라는 책을 저술했는데, 이 책이 3백만 부나 팔리는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에서 사회적, 기술적 발전으로 얻어진 부가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주어지지 않는 이유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땅 소유주나 건물 소유주가 그 이익을 독점적으로 착취해서 산업화가 아무리 진행되어도 노동자들은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요즘 상황에 대입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모노폴리라는 게임은 독점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리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얘기다. 이 게임을 해보면, 왜 그런지 확실히 알 수 있긴 하다. 모노폴리는 같은 색깔을 가진 땅을 다 매입해야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일단 한 구역을 독점하면 건물을 마구 지어서 임대료를 올려받을 수 있다. 다른 게임자들이 그 땅을 거쳐 가면, 금방 빈털터리가 되어서 파산하고 만다.

메기가 처음 만든 건물주 게임은 계속 다시 만들어지다가 1924년 특허를 얻게 되었다. 이 당시만 해도 거의 수공으로 만들어지다가 처음으로 상업화가 되었다. 그 후에 ‘찰스 대로’라는 사람이 건물주 게임을 변형하여 현재의 모노폴리를 완성한다. 찰스는 원래 필라델피아 근교에 살면서 보일러 판매를 했는데, 대공황의 여파와 1929년 증권시장 붕괴로 실직한다. 이웃이나 친구들이 리지가 개발한 게임을 하는 것에 아이디어를 얻어서 모노폴리를 만들었다.

원래 중서부 지방의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 유행한 리지의 게임은 동부까지 퍼지게 되어 마침내 뉴저지 아틀랜틱 시티까지 전해졌다. 찰스에게 그 게임을 가르쳐준 사람이 아틀랜틱 시티에서 배웠기 때문에, 아틀랜틱 시티에 있는 거리 지명이 그대로 모노폴리에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모노폴리는 찰스가 혼자 창작한 게임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완구 회사 파커 브라더스가 모노폴리는 지나치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복잡하다고 해서 여러 번 퇴짜를 놓기도 했다. 하지만 1935년 이 게임을 팔기 시작해서 엄청난 수익을 올리게 된다. 1973년 랄프 앤스팍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 경제학 교수는 반독점 게임이라는 유사한 게임을 만들었다가 파커 브라더스에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독점의 무서움을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임이 게임 시장을 독점하는 재밌는 현상이다. 대공황기의 노동자들이 왜 이 게임에 몰두를 했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비참한 현실을 벗어나 게임 속에서 부자로 거듭날 수 있다는 환상이 모노폴리의 인기비결이 아니었을까.

모노폴리의 한국판이라 할 수 있는 부루마블은 어린 시절 동경하던 게임이었다. 미국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집에서 만들어서 하던 게임이 모노폴리라면, 한국 부루마블은 당시 8천 원이나 하던 중산층 아이들을 위한 고급게임이었다. 어린이 잡지에서 대대적으로 광고하던 바람에 그 게임 하러 친구 집에 놀러 갔던 기억이 난다.

독점이고 뭐고 느끼기보다는 부루마블 지폐가 진짜 돈보다 더 근사해 보였다. 부루마블에 관한 추억을 얘기하면 너무 길어지니 이만 줄인다. 미국의 보드게임 모노폴리가 태평양을 건너 1980년대 한국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시절이 있었다. 독점에 대한 경계는 사라지고 건물주가 되어 근사하게 살고픈 욕망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