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와 국익

한미 FTA 타결의 소식이 전해진 후 며칠이 지났다. 언론들이 앞다투어 FTA 관련 여론조사와 협상이 가져올 미래에 관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언론 보도에서 서로 다른 견해가 다투고 있지만, 곧 정리될 것이다. 참여정부가 협상의 내용을 그동안 비밀에 부쳐놓아서 공개된 정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할 뿐이다.

한미 FTA 타결에 긍정적인 여론이 다수이고, 다수당인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찬성하는 모양이니 국회 비준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한 발 더 다가가고 있다. 이는 이제 거부할 수 없는 대세다. IMF 이후 가속화된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한미 FTA를 통해서 확고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무한경쟁 사회가 반드시 참여정부가 말한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줄 지 알 수 없다.

참여정부는 헌법에도 보장된 표현의 자유인 시위를 원천 봉쇄하고, 언론몰이와 국민홍보를 통해서 여론을 장악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한미 FTA는 ‘국익’에 도움이 되니 반대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논리로 무장하고 말이다. 한미 FTA는 국민의 참여를 거부한 참여정부의 일방적인 통보로 다가왔다.

나는 이 ‘국익’이란 말에 신물이 난다. 진정한 국익이 특정한 세력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국익이란 말을 내세운 행동은 언제나 누군가의 희생이 강요된다. 한미 FTA에 가장 큰 희생을 강요당한 사람들은 바로 ‘농민’이다. 참여정부는 섬유와 자동차산업 자본가들의 편을 들어주었다. 과거 박정희를 비롯한 군사 정권들이 이미 써먹은 수법이고, 기막히게 사람들이 쉽게 설득당한 논리이다.

한국의 시민사회가 성장하면서 개인의 인권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국익이란 괴물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참여정부는 과거의 의문사를 해결하려 들지만, 대추리에서 벌어지는 농민탄압에는 눈을 감고 있다. 국익이 역겨운 또 다른 이유는 국익에 희생당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잔인하기 때문이다. 한미 FTA는 농민이나 문화산업 종사자들을 위한 보호장치 없이 거리로 내몰겠다는 심사다. 인권은 수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는다. 또한, 힘이 있고 없는 것으로 편 가르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에게 일방적으로 희생하라고 말하는 국익은 인권과 완전히 상충하는 가치다.

국익이라는 신화는 약자들의 희생을 당연시한다. 마찬가지로 이번 협상으로 이익을 얻은 세력들도 침묵한다. 캘리포니아 와인, 플로리다 오렌지, 미국 쇠고기를 싸게 먹을 수 있으니 농민들이 손해 보는 건 괜찮다구? 국익을 위해서 누군가 희생을 강요하지만, 희생의 대상을 결정하는 건 언제나 사회적 강자이다. 과거 경제개발 명분으로 기꺼이 목숨을 바친 노동자들에게 국익이라는 신화를 무엇을 해주었나? 참여정부의 사회에서도 국익이라는 말로 약자의 인권을 짓밟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누구를 위한 국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