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도취에 빠진 두 변호사

‘보스턴 리걸’은 데이비드 켈리의 작품인 ‘프랙티스’에서 갈라져 나온 프로그램이다. 현재 ABC에서 방송 중인데 시청률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프랙티스’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합류한 약간 엉뚱하지만 탁월한 실력의 변호사 앨런 쇼어(제임스 스페이더)가 주인공인 법정 드라마다. 그리고 왕년에 전설적인 변호사였지만 지금은 그 명성으로 살아가는 데니 크레인(윌리엄 쉐트너)도 보스터 리갈을 이끌어 가는 중요한 캐릭터다.

앨런과 데니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구석이 있다. 우선 두 사람의 정치적 성향은 완전히 반대다. 앨런은 사형제를 반대하고 게이의 인권을 옹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이지만 데니는 사무실에 총을 소지하는 골수 보수 공화당 지지자다. 둘은 이런 정치적 성향 때문에 항상 다툰다. 하지만 둘은 누구보다 비슷하다. 앨런과 데니는 모두 세상의 중심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에 있어서 데니가 오히려 심각하다. 데니는 말끝마다 ‘데니 크레인’을 붙인다. 마치 유명한 사람의 말을 인용하듯 자신을 드러내려고 한다. 이런 그의 행동은 사람들의 웃음을 사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이게 데니의 캐릭터다.

앨런도 데니 못지않은 자기중심적 세계관에 푹 빠져있다. 뛰어난 변호 실력 때문에 어려운 사건이 있으면 모두들 앨런을 찾아온다. 앨런은 이런 상황을 항상 즐기며 제멋대로 군다. 앨런은 이상한 옷차림으로 사무실을 돌아다니거나 회의에서 엉뚱한 발언을 자주 한다. 지나친 자신감의 발로일까. 알렌은 위계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변호사에게 도발적 언행을 한다. 전형적인 자기중심적 행동으로 화를 돋우는 일이 자주 있지만 정작 본인은 이걸 즐긴다.

보스턴 리갈은 데이비드 켈리의 전작인 ‘엘리 맥빌’과 ‘프랙티스’를 적절히 섞어놓은 느낌이다. 엘리 맥빌의 코미디와 프랙티스의 진지함이 잘 어우러져 있다. 엘리 맥빌에 자주 등장하는 화장실 장면을 ‘보스턴 리걸’에서도 볼 수 있다. 데이비드 켈리는 화장실을 진솔한 대화가 이뤄지는 곳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프랙티스’에 나오는 연쇄살인범 이야기도 보스턴 리갈에서 웃기게 그려진다. 프라이팬으로 사람을 죽이는 노인은 무지막지한 살인마가 아니라 세상과 소외된 키 작은 광대로 묘사된다. 이렇듯 무거운 주제도 너무 무겁지 않게 유머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시리즈의 흥미로운 설정은 매 에피소드가 끝날 때 앨런과 데니가 회사 발코니에서 나누는 대화다. 일종에 에피소드를 대한 정리하는 내용인데 꽤 성찰적이고 솔직한 대화가 오간다. 앨런이 총기를 든 범인에게 거의 죽을 뻔한 에피소드에서 앨런은 데니에게 고백한다. 이제 죽는다고 생각했을 때 떠오른 사람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여자친구가 아니라,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배우 라이자 미넬리였다고. 이 둘의 발코니 대화에서 건질만 한 명대사가 이 시리즈를 보는 큰 즐거움 중에 하나다.

데이비드 켈리의 시리즈는 은근히 정치적 문제를 다룬다. 물론 직설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민감한 이슈인 사형제, 광우병, 제약회사의 문제를 법정 소재로 다룬다. 자신의 견해가 어떤지 은근히 짐작할 수 있지만, ‘보스턴 리걸’에서 노골적으로 편들지 않는다. 그냥 생각할 소재를 슬쩍 던져준다고 할까. 이슬람을 비난하고 공격하길 조장하는 폭스뉴스를 막아버린 교장의 딜레마를 그린 에피소드가 있었다. 교장은 관용을 모르는 그런 뉴스는 필요없다고 불관용한다. 법정은 교장을 고발한 공화당 학생의 편을 들어주지만 왠지 씁쓸하다. 그렇다면 KKK도 표현의 자유라고 봐야 하는가?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지 그 선이 문제다. 데이비드 켈리는 이런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양측의 입장을 균형 있게 표현하고자 무척 애를 쓰고 있다.

시즌 1을 다 보고 나니 보스턴에 한번 가보고 싶다. 멋진 정장을 입고 돌아다니는 변호사들을 구경할 기회 없는 지금의 소도시와 분위기가 아주 다르다. 야구단 하나 없는 솔트레이크시티와 달리 보스턴 사람들은 레드삭스의 의미가 남다르게 보인다. 보스턴에서 레드삭스의 인기는 대단하다. 앨런이 텍사스로 가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텍사스 사람들이 매사추세츠에서 온 앨렌을 대하는 태도는 무서웠다. 같은 미국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주마다 다른 문화가 존재하는 미국은 아주 재미있는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