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DVD 빌리기

한국에 있을 때만 해도 비디오 테입이 주류였다. 미국으로 온 이후에도 얼마간 비디오와 DVD를 번갈아 봤지만, 서서히 DVD가 비디오를 대체하는 시기가 왔다. 자주 영화를 빌려보는 나에게 미국에서 DVD 대여를 하는 건 너무 비쌌다. 한국에서 천 원이나 심지어 오백 원에 빌려볼 수 있는 게 미국은 오천 원 정도였다. 게다가 연체료도 엄청났다. 극장에서 학생 할인으로 영화를 보면 6~7천 원 정도였으니 영화 대여가 나에게 그다지 매력이 되지 못했다.

가끔 굉장히 보고 싶은 영화나 빌려보고 주로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아니면 케이블에서 해주는 영화를 봤다. 최근 들어 영화 회전에 아주 빨라져서 극장에서 케이블로 오는 시간이 더 줄었다. 새 영화에 대한 갈증이 크지 않아서 참을만했다.

동네 비디오 가게나 전국 체인인 블록버스터나 공공도서관에서 그때그때 빌려보면서 영화에 대한 욕구를 나름 해소했다. 몇 년 전부터 다시 DVD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블록버스터에서 온라인 DVD 대여를 한다고 하길래 시험 삼아 가입했다. 미국의 경우 보통 이런 서비스를 시작할 때 공짜로 몇 주간 볼 수 있다.

이 서비스를 써보니 아주 편했다. 인터넷에 내가 원하는 DVD를 신청하면 순서대로 우편으로 보내줬다. 다 보고 나면 보내온 봉투에 담아서 반송하면 다음 DVD를 받아볼 수 있다. 물론 우편요금은 따로 내지 않아도 된다. 내가 썼던 서비스는 한 달에 17불 내고 동시에 3개를 볼 수 있는 거였다. 연체료도 안 내고 원하는 만큼 DVD를 집에서 볼 수 있다.

재미가 들려서 정말 많은 영화를 봤다. 한 달에 10개 이상 봤던 것 같다. 이사를 오면서 온라인 대여를 처음 시작한 넷플릭스로 바꿔봤다. 넷플릭스가 블록버스타보다 많은 종류의 DVD를 빌려준다. 독립영화, 다큐멘터리나 외국영화에 강점이 있었다.

한국에서 이런 비슷한 서비스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미국에서는 온라인 DVD대여는 점점 인기를 얻고 있다. 넷플릭스가 온라인 DVD대여를 1998년에 처음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인기를 얻으리라 상상도 못 했다. 2007년 5월 2일 기준으로 넷플릭스는 6백7십만 명의 고객을 확보했다.

넷플릭스는 거듭된 혁신과 고객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전략을 통해 발전해왔다. 특히 아마존의 추천도서와 비슷한 추천 DVD 같은 서비스는 이용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정확히 어떤 알고리즘을 사용하는지 알 수 없지만 내 경험상 블록버스터 온라인보다 더 정확한 추천 목록을 제공한다. 이용자들의 데이터베이스가 더 많이 쌓여서 그럴 수도 있다. 넷플릭스는 그 이외에도 비슷한 영화 취향의 다른 이용자들의 목록을 보여주는 등의 혁신적인 서비스도 많다.

이런 넷플릭스도 블록버스터의 가격 공세와 오프라인 대여점의 장점을 살린 서비스에 타격을 받았다. 빌린 DVD를 블록버스터에 가져오면 추가로 다른 DVD를 볼 수 있다. 블록버스터는 우편요금도 절약하고 넷플릭스가 제공할 수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빠르게 이용자들을 뺏어오고 있다.

넷플릭스는 이에 대응하여 가격을 내리고 온라인 시청 시비스를 추가로 제공했다. 넷플릭스와 블록버스터의 마케팅 전쟁은 본격적으로 불붙고 있다. 어떤 새로운 전략과 서비스가 나올지 무척 궁금해진다.

미국은 홈씨어터 시스템의 보급이 아주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핵가족화도 한국보다 빠르고 개인주의적 라이프스타일은 홈엔터테인먼트 시장을 크게 만들고 있다. 영화관보다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오락이 아주 발달하게 되었다. 교외에 거주하는 다수의 심심한 중산층 가족이 즐길 거리로 DVD가 최고다.

장기적으로 인터넷을 통한 영화 보기가 유행하겠지만 아직은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미국이 워낙 땅덩어리가 커서 초고속인터넷망을 까는데 시간과 돈이 요구된다. 그래서 미국의 인터넷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고 비싸다. 안정적인 인터넷이 확산된 이후라야 인터넷 영화시장이 커질 수 있겠다. 아이튠스나 아마존에서 인터넷으로 영화 다운로드를 시작했으니 좀 더 지켜보면 알 수 있으리라. 현재로서 우편을 통한 DVD 대여가 대세다. 오락거리가 별로 없는 미국의 소도시에서 이만한 오락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