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공존하는 현재

가끔 방문하는 미디어 학자 ‘헨리 젠킨스’의 블로그에서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미디어의 발달이 현재와 과거의 관계를 새롭게 형성하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면, 1930년대 라디오 코미디와 드라마가 인터넷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유튜브로 오손 웰즈의 라디오 쇼도 들을 수 있다. 현재를 살면서도 과거를 즐길 기회가 더 많아진다. 과거가 동떨어진 현실이 아니라 현재와  공존하는 세상이 되었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각종 케이블 채널에서 과거의 인기를 누리던 프로그램을 다시 접하게 되는 경우가 늘어났다. 케이블 방송은 이런 공중파의 재방송이 없다면 제대로 운영되기 힘들다. 주말이면 한 프로그램을 몇 시간이고 특별방송을 해주기도 한다. 최근에는 DVD 출시의 붐이 일어서 웬만한 프로그램은 다 구할 수 있다. 50년대 미국에서 히트한 ‘왈가닥 루시(I Love Lucy)’도 대부분 복원되었다.

얼마 전 장을 보러 코스코에 갔다가 ‘맥가이버’와 ‘원더우먼’이 DVD로 출시된 걸 알았다. 이것 말고도 10대 시절에 즐기던 외화시리즈는 거의 다 출시된 듯싶다. 내가 원한다면 과거 텔레비전 프로그램만 보면서 지낼 수 있는 세상이 되고 있다. 심지어 70년대 정서를 바탕으로 만든 ‘요절복통 70쇼’도 몇 년 전에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도 가는 세상에 과거의 미디어가 다시 붐이 되는 건 아이러니다.

인터넷으로 몇십 년 전 라디오 공연을 들으면서 과거로 여행을 떠난다. 기술의 발전은 미래뿐 아니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젠킨스의 말에 따르면 디지털 복원기술이 아주 높아서 현재의 다른 프로그램을 즐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과거 프로그램의 인기는 기술 이외에도 다른 원인이 있다. 수용자들은 과거의 프로그램을 원하고 있고, 적극적으로 소비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미디어 회사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보다 돈을 덜 들이면서 이익을 챙길 수 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는데 포기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런 쌍방의 욕구가 만나서 과거 프로그램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다.

사람들이 과거의 프로그램을 즐기면 퇴행적인가? 꼭 그렇진 않다고 본다. 명작의 반열에 오른 작품은 리메이크가 되어 새로운 독자들과 만날 수 있다. 내 경우는 1940년대와 50년대 영화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았다. 자신이 살아온 시기와 일치하지 않더라도 특정 시기의 정서가 통할 수 있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이런 분야에 대한 연구도 꼭 해보고 싶다. 우리는 과거의 홍수 속에 살고 있고 그 영향을 어떻게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