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표현인가, 착취의 수단인가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저수지의 개들’에서 핑크(스티브 부세미)가 팁을 왜 줘야 하는지 불만을 잔뜩 늘어놓는 장면이 나온다. 핑크는 팁으로 먹고사는 웨이트리스를 존중하지 않는 몰상식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팁 말고 급료만으로 생활하기 힘든 식당 종업원이 생각할 때, 핑크는 노동의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나쁜 손님이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팁에 대한 고민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였다. 사회적 관례이기 때문에 팁을 기계적으로 줬지만 왜 줘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줘야 하는지 물어가며 그대로 따랐다. 한국과 달리 팁을 내야하는 미국의 관습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항상 궁금했다. 그리고 팁에 대한 비율은 누가 정했는지도 의문이었다.

미국 식당에서 받는 팁만 계산해도 2003년에 이미 260억 달러를 넘었다. 팁은 이미 단순한 사회적 관습을 넘어서 엄청난 경제적 현상이다.

동정에서 서비스의 대가로 변화

팁에 대한 문헌에 따르면, 중세에 봉건영주가 여행하다가 길에서 거지들을 만나면 동전을 던져줬다. 안전한 길을 확보하기 위해서 거지들에게 사례로 팁을 줬다. 엄밀히 따지면 이건 서비스에 대한 보상이라는 팁의 개념과 다르다. 구걸에 대한 동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팁이라는 말의 기원은 16세기 후반 영국의 커피하우스에서 비롯되었다. T.I.P. (To Insure Promptitude)라는 문구가 커피하우스에 새겨졌다. 빠른 서비스를 위해서 돈을 줬던 모양이다. 이런 관행은 나중에 선술집으로 확산되었고 다른 직종으로도 서서히 퍼져나갔다.

영국에는 사적 공간에서 팁이 관례가 된 적 있다. 손님이 초대를 받아서 그 집에 머물게 되면 그 집 하인들에게 팁을 줘야 했었다. 처음에는 누군가 자발적으로 감사의 사례로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팁을 노골적으로 바라는 하인들 생겨나자 팁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커져서 초대를 받아도 가지 않게 되는 일이 흔해졌다.

주인들은 하인들이 팁을 받는다는 이유로 급료를 적게 주면서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764년 런던에서 귀족들이 모여 팁이라는 관습을 없애기로 결의하게 된다.

기원이 유럽이었던 팁은 남북전쟁이 끝난 후에야 미국으로 건너오게 된다. 남북전쟁 이전에 미국 주인은 노예를 마구 부렸지만, 노예가 사라지고 하인 계급이 생겨나면서 팁에 대한 관습이 서서히 받아들였다.

팁은 비민주적 고용주 중심

미국에서 1890년대 후반에 되어서야 팁 받는 관습이 확립된 것으로 알려졌다. 1910년대 초반에 전체 직종의 약 10% 정도가 팁을 받는 직업이었다. 미국인들은 처음에 팁을 사악하고 비민주적인 제도라고 생각했다. 정당한 급료를 받는 대신에 팁을 받게 되면 팁 주는 사람과 팁 받는 사람 사이에 계급을 나누게 된다. 팁 받는 사람은 팁 주는 사람에게 팁을 더 받기 위해 굴욕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미국 몇몇 주의 노조나 손님이 팁이라는 제도를 없애기 위한 법률을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팁이 새로운 관습이 되면서 사회적 혼란을 가져오기도 했다. 팁을 주지 않는 사람에 대한 보복이 이뤄졌다. 호텔의 짐꾼들은 분필로 팁을 주지 않는 손님의 짐에 표시해서 일부러 짐을 떨어뜨리는 행위를 했다. 1918년 시카고에서 100여 명의 웨이터들이 팁에 부정적인 손님들의 음식에 일부러 파우더를 뿌려서 체포되기도 했다.

식당에서 일할 권리금이라는 개념이 출현하기도 했다. 일부 고급 레스토랑에서 웨이터와 웨이트리스에게 봉급을 주지 않고 오히려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음식값이 비싼 만큼 그에 대한 팁도 많이 받으니 팁의 일정 비율을 달라는 것이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일할 수 있는 특권을 줬으니까 그에 대한 보상을 강요하는 셈이다.

팁에 대한 정당성으로 내세우는 논리로 양질의 서비스를 팁이 보장한다고 한다. 마음에 드는 서비스를 받으면 팁을 더 주고 그렇지 않으면 팁을 적게 준다면 서비스가 좋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팁을 많이 받기 위해 필요이상 손님에게 주문을 강요하거나 부담을 느끼게 하는 웨이터들도 있다.

팁으로 먹고살 수밖에 없는 웨이터들에게 매번 돈으로 평가하는 일은 좀 잔인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불친절하더라도 팁을 주지 않는 일은 양심이 좀 찔린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식당에서 줘야 할 급료를 거의 주지 않고 웨이터들이 손님에게 팁을 구걸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그래서 의식 있는 일부 식당은 팁을 부과하지 않고 봉사료를 받아서 종업원에게 정당한 급료를 준다.

팁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업주나 주인이 이런 구조를 착취한 부분을 간과할 수 없다. 동정이나 구걸을 바라던 중세의 거지나 손님의 호의를 바라는 종업원은 서로 다를 바가 없다. 팁은 어쩌면 고용주들이 종업원을 길들이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만든 도구가 아닐는지. 자발적 감사의 표시가 사회적 관습이 된 팁이라는 제도의 가장 큰 혜택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고용주들이 보고 있다. 임금 인상에 대한 요구를 받을 필요가 없게 된 고용주는 팁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돈을 더 벌고 싶으면 음식을 더 많이 팔아서 팁을 많이 받아라는 한마디만 날리면 그만이다.

팁이 서비스의 질을 높여준다면, 팁을 주지 않는 일본이나 호주 서비스의 수준이 미국보다 못한가?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으며 서비스에 대한 평가를 돈으로 하는 손님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보통 10% 정도 팁을 주는 유럽과 달리 미국에서는 15~20% 정도 팁을 준다. 보다 자본주의화 된 미국 사회가 종업원을 착취하는 만큼을 손님들이 보상해주는 것이다. 팁을 주지 않는 손님보다 팁이라는 제도를 악용하는 고용주야말로 더 나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