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불편한 60년대가 판타지로

1962년 미국 동부 볼티모어가 배경이 된 영화 ‘헤어스프레이’는 춤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1960년대 미국 사회가 겪고 있는 사회적 갈등을 적절하게 표현한다. 주인공 트레이시는 예쁘지도 않고 뚱뚱하고 가난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상당히 우울한 느낌의 영화가 예상되지만, 첫 장면부터 통쾌하게 관객의 예상을 뒤엎는다. 트레이시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순간부터 활기차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현실의 가난이나 그녀의 육중한 몸도 트레이시의 구름을 산책하는 듯한 기분을 가라앉히지 못한다.

60년대 미국의 판타지

‘헤어스프레이’는 판타지 영화로 볼 수 있다. 1960년대 미국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였다. 인종 갈등으로 수많은 흑인이 목숨을 잃었다. 1988년 존 워터스가 만든 동명의 원작영화는 좀 더 거칠게 현실을 다룬다. 2007년에 이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너무 현실을 미화하고 가볍게 그렸다는 비판이 있었다. 사실 ‘헤어스프레이’는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거울 같은 영화가 아니라 즐거운 한바탕 꿈 같은 판타지에 가깝다.

미국의 1960년대는 50년대 보수적 가치에 대한 저항이 전 사회적으로 일었던 시기였다. 50년대는 매카시즘 광풍과 냉전으로 인해서 정치적인 보수주의가 팽배했다. 정치적으로 60년대는 케네디 대통령이 집권했고 영국이나 이탈리아에서도 좌파정권이 출현했다. 60년대는 이러한 보수적 가치에 대한 저항이 싹이 대중문화 속에서도 커가기 시작했다. 모타운의 흑인음악, 포크록, 영국팝이 대중적으로 유행했다. 영화계에서 처음으로 사회적 금기가 되던 섹스와 폭력이 다뤄지기 시작했다. 헤어스프레이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헤어스프레이’는 불편한 현실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의 방식이 아닌 인위적인 연출에 의존한 판타지 뮤지컬 영화다. 심각한 현실을 꼭 심각하게 다룰 필요는 없다. 심각한 현실에 코미디를 접합시킨다고 해서 반드시 그 현실이 우스워지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들을 가볍게 다루고 있다고 비판받는 것 자체가 결국 웃음이나 과도한 헤어스타일도 잔인한 현실을 완벽하게 감출 수 없음을 방증한다.

‘해리포터 시리즈’가 불행한 현실에 불만을 느낀 고아가 상상하는 판타지라면, 헤어스프레이는 비만의 노동자계급 소녀가 꿈꾸는 몸과 피부색에 대한 차별이 사라진 판타지다. 트레이시가 부르는 첫 노래 ‘굿모닝 볼티모어’의 배경이 되는 곳은 이렇다. 다닥다닥 붙은 똑같은 집이 늘어져 있고, 쥐가 돌아다닐 정도로 지저분한 골목에 술주정뱅이, 노숙자, 성도착증 환자가 돌아다닌다. 트레이시가 이런 만만찮은 현실에도 굴하지 않는 이유는 10대들의 우상이 된 코니 콜린스의 텔레비전 댄스 쇼 때문이다. 트레이시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흥겨운 춤을 따라 하면서 판타지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흑백 갈등의 폭발

‘헤어스프레이’의 가장 중요한 갈등의 축은 흑백갈등이다. 볼티모어 지역방송국의 ‘코니 콜린스 쇼’는 한달에 한번씩 ‘흑인의 날’을 만들어 흑인들이 흑인음악에 맞춰 춤출 수 있는 유일한 코너를 마련했다. 백인들과 흑인들이 텔레비전에서 같이 춤추는 것은 당시 금기시되는 현실이었다. 대중문화 바깥의 흑백 분리 정책은 더 가혹했다. 백인을 위한 레스토랑, 영화, 학교가 따로 있었고 이런 곳에 흑인은 접근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다. 버스에서도 흑인석과 백인석이 지정되어 있을 정도였다.

반문화운동과 히피의 시대라고 흔히 알려진1960년대는 또한 흑인 인권운동의 시기이기도 하다. 히피들은 대부분이 기성세대에 불만을 가지고 자유분방한 삶을 추구한 백인들이었다. 하지만 60년대 흑인들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인권운동을 하였기 때문에 더욱 가혹한 탄압을 받았고 그만큼 절실했다. 트레이시는 너무나 순진하게 왜 텔레비전 같은 주류 대중매체가 멋진 흑인 춤 같은 멋진 흑인문화를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는지 반문한다.

아시다시피 블루스나 재즈 같은 장르는 모두 흑인문화에서 발생하였다. 미국 대중문화에서 흑인문화를 빼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흑인들에게 춤을 배운 트레이시는 코니 콜린스 쇼에 당당하게 입성해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 60년대 텔레비전은 춤을 잘 추는 흑인은 받아주지 않으면서 흑인에게 사사받은 백인은 괜찮다고 말한다. 트레이시와 흑인 친구들은 이런 흑백 분리에 저항하며 백인과 흑인이 같이 섞일 수 있는 쇼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다.

영화 속에 흑인과 백인의 커플이 등장한다. 트레이시의 친구인 백인 페니는 트레이시의 춤 스승인 흑인 씨위드를 사귄다. 흑인과 백인의 커플은 2000년대의 미국에서도 흔하지 않다. 1967년 영화 ‘초대받지 않은 손님(Guess Who’s Coming to Dinner)’에서 백인 딸이 흑인 남편감을 저녁 식사에 데려오는 장면이 있다. 스스로 진보적이라 자처하던 백인 부모도 흑인 사위를 쉽사리 인정할 수 없었다. 60년대 흑백 커플은 살해 협박을 받거나 폭행을 당하기도 했었다.

성 정체성과 성 역할

트레이시의 어머니인 에드나는 존 트라볼타가 여장을 하고 연기한다. 1988년 원작영화에서도 남자배우가 에드나를 맡았다. 영화에서 직접 다루고 있지 않지만 성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드러난 부분이다. 에드나는 거대한 몸집을 부끄러워하며 거의 바깥출입도 거의 하지 않지만, 나중에 트레이시의 도움으로 집 바깥으로 나오게 된다. 시위에 참여하기도 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찾는 동성애자의 은유로 해석할 수도 있다. 60년대는 동성애 인권운동이 시작된 시점이기도 하다.

존 트라볼타의 여장 연기는 압권이다. 존 트라볼타는 연기를 위해 거대한 체구로 변신하면서도 손짓 하나 말투 하나까지 여성스러움이 묻어나게 표현한다. 남녀 간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을 연기로 보여주려 한다. 에드나는 성 역할에 변화가 본격적으로 다가온 60년대를 상징한다. 에드나는 집에만 머무르는 가정주부의 생활을 벗어나 트레이시의 매니저로 나서는 등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여성의 사회진출을 암시한다.

여성의 미에 대한 성찰도 찾을 수 있다. 트레이시는 키도 작고 뚱뚱하지만, 킹카인 링크의 사랑을 얻는 데 성공한다. 링크가 금발에 늘씬한 여자친구를 버리고 트레이시를 선택하는 다분히 비현실적인 설정도 이 판타지 영화속의 세계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슈퍼 모델의 몸매를 가지려고 성형수술도 마다하지 않는 현대의 세태에 대한 유쾌한 도전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 소녀인 트레이시는 판타지 세계에서는 못할 것이 없는 퀸카다.

헤어스프레이만 뿌리면 아무리 헝클어진 머리도 단단하게 세울 수 있는 것처럼 지독한 인종갈등도 뮤지컬 코미디 속에서 부드럽게 풀어진다. 웃음은 현실을 왜곡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렇게 쉽게 풀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인종 문제는 판타지처럼, 영화처럼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갈등이 아니었다. 60년대 시민운동의 희생이 없었다면 2000년대 대중문화는 여전히 흑백 분리의 차별적인 모습이었을 것이다.

노스텔리지어냐 현실이냐?

노스텔지어를 자극하는 많은 영화는 대체로 촌스럽다. 헤어스타일이나 옷차림이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우스꽝스럽다. 이런 차림으로 돌아다니면 놀림을 받기 십상이다. 2000년대에 트레이시 같은 소녀가 뉴욕 거리를 활보한다면 주위의 주목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60년대의 인종분리정책을 다시 살펴보면 그 촌스러움 때문에 웃음이 날 것이다. 당시에는 당연한 진리처럼 여겨졌던 패션이나 정책은 지금의 관객에게 촌스러운 웃음을 자아낸다. ‘헤어스프레이’가 자극하는 노스텔지어는 끔찍한 현실을 벗어난 2000년대가 느끼는 안도감이 아닐까.

인종차별은 노스텔지어가 아니라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인 미국의 사회문제이다. 60년대에 비해서 2000년대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노스텔지어의 영역에 들어갈 정도는 아니다. 공공장소에서 흑백 분리는 사라졌지만, 경제적 차이에 따른 거주지 분리가 생겨났다. 백인 중산층의 거주지역에 흑인이 나타나면 모두 경계하고 경우에 따라 경찰에 체포당할 수 있다. 흑인 대통령 후보자도 나온 세상이지만 흑인들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은 쉽게 근절되지 않는다. 노예제도를 바탕으로 부를 축적한 미국의 과거에 대한 빚은 언제나 안고 가야 할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