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타 미술관 구경기

아내가 참여 관찰하러 유타 미술관에 간다기에 나도 무턱대고 따라나섰다. 처음에는 유타대학교에 있는 미술관이라고 해서 은근히 얕보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관람 후에는 생각이 달라졌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소장하고 있는 작품의 수준은 상당히 높았다. 그리고 특별 기획전도 대충 구색만 갖추는 것이 아니라 아주 짜임새 있고 창의적이라서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오늘은 특별히 보려던 기획전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서 미술관을 대충만 훑어봤다. 어차피 학교에 있는 미술관이라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올 수 있는데, 그동안 지척에 두고도 가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표를 끊으니 입장권 대신에 스티커를 하나 준다. 이걸 옷에 붙이고 돌아다니면 된다. 오늘의 스티커는 검은색인데 날마다 색깔만 달라진다고 한다.

특별전 가운데 하나는 수잔 스와츠의 작품전이었다. 40년 넘게 미국, 프랑스, 아프리카의 자연을 그려온 화가인데 지금은 이 근처 동네인 파크시티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닌 추상화를 그린다. 작품에 따라서 원래 대상을 알아 볼수 있는 것과 완전 추상에 가까운 것이 있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유화가 아니라 아크릴화였다. 나는 특히 색감이 마음에 들었다.

autumn

천국이라는 작품을 처음으로 봤는데, 몽환적이고 무질서한 느낌이다. 그런 느낌이 어렴풋이 전달되긴 했지만 여전히 추상화는 내겐 어렵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가을풍경이다. 세 개의 작품이 모여서 가을풍경을 자아낸다. 작품 사이의 빈 공간이 묘한 느낌을 준다. 콜로라도 아스펜에서 그린 그림이다고 한다. 이런 풍경으로 그냥 들어가고 싶다. 아내가 제일 좋아한 작품은 연꽃이다. 나는 덕수궁에서 봤던 연꽃이 문득 떠올랐다.

마침 추상표현주의의 특별전인  ‘Suitcase Paintings’이 열리고 있었다.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의 작품이 대체로 규모가 큰 것이 많은데 이번 특별전은 유명한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이 그린 여행 가방에 들어갈 만한 작은 그림들만 모은 것이라고 한다. 미국 전역 6개 미술관 순회전시를 한다고 한다. 카탈로그를 보면 잭슨 폴락의 그림도 있다고 해서 그 방을 샅샅이 뒤졌는데 없었다. 아마 무슨 사정이 있어서 빠졌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drawing in cup
중간에 배가 고파서 커피숍에 가서 커피랑 빵을 사 먹었다. 커피 다 마시고 난 컵에다 그림을 그려봤다. 그림을 자꾸 보다 보면 나도 한번 그려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열심히 그렸는데 나중에 보니 그림이 기울어졌다. 예전에 가끔 가던 덴버 미술관에는 스케치북과 연필이 비치되어 있었는데 여기도 스케치북과 연필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원작 조형물은 높이가 무려 3m나 되어서 한참 올려다 봐야 한다. 제목은 ‘소수민족인(Ethnic Man)’이다. 아내는 표정이 너무 슬퍼보여서 제목이 ‘울고 있는 남자’가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키가 무척 크지만 그다지 위압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다른 특별전으로 신데렐라 전시가 있었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동서양에 퍼진 신데렐라 이야기와 미술품을 다룬다는 의도는 이해가 되지만 정작 모아놓은 것은 일본의 결혼식 기모노, 미국의 신발, 유럽 상류층의 장식용품들이었다. 그게 어떻게 신데렐라와 관련이 있는지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작은 미술관이었지만 동양관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한국관은 일본관 한 귀퉁이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그 안에서 발견한 한국의 도자기 여섯 점이다. 그래도 신라, 고려, 조선 시대까지 아우르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오랜만에 날이 화창하게 개어 있었다. 얼마 만에 보는 파란 하늘인가. 미술관은 구경은 잘하고 집에 왔더니, 숭례문이 불에 타버렸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다. 명색이 국보 1호인데 관리가 이토록 허술했다니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