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세속적인 신앙 수기

처음에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릴 때 나는 수도원을 두루 돌아보는 기행문을 기대했었다. 다 읽고 난 소감은 신앙수기, 신앙고백서에 가까운 글이었다. 가톨릭 신자였던 공지영은 18년 만에 다시 가톨릭으로 다시 돌아온다.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유럽의 수도원 기행을 우연히 떠난다. 그 여행에 대한 기록과 종교에 대한 생각이 교차하는 독특한 산문이 이 책을 채운다.

공지영의 소설 ‘봉순이 언니’를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도서관에서 그녀의 기행기를 발견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그 책을 집었다. 공지영의 기행 글은 소설과 자서전을 섞어놓은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상상을 통해서 종교와 관련된 자신의 경험과 유럽의 수도원 연결하고자 했다. 그다지 설득력 있는 연결은 못 되었고 맥락과 벗어난 내용도 불쑥 나온다. 차라리 이런 기행문 대신에 수도원 기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다.

수도원을 다룬 기행 글이라면 적어도 역사나 건물이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충실하게 소개되어야 한다. 가이드북처럼 자세하게 쓸 필요는 없지만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 여행지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그 글을 읽을 때 그런 배경 지식 없다면 글을 따라가기 어렵다. 공지영은 불친절하게 소개도 제대로 해주지 않고 자신의 감정만 늘어놓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책에서 밝히고 있듯이 수도원 기행에 대한 사전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이었다. 해박한 여행 안내자가 아니라 그냥 관광객의 눈으로 유럽의 수도원을 돌아본다.

이 책은 수도원에 대한 이야기보다 자신의 신앙에 대한 글이 더 많은 편이다. 나처럼 종교가 없는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다. 여행 내내 돌아온 종교 때문에 눈물 흘리는 부분이 필요 이상으로 그려진다. 기대했던 기행 글이 적게 나오고 수기만 나와서 나는 적잖이 실망했다. 종교적인 사람이라면 의외의 글에 반가웠을 수도 있다.

공지영의 종교에 관해 논지는 이랬다. 그녀는 굉장히 종교에 비판적이었다. 한때 마르크시즘에 경도되어 종교는 아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종교를 다시 가슴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리고 종교의 눈으로 세상사를 다시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고 그걸 이 여행을 통해서 새삼 깨닫고 있다고 했다. 공지영의 쿨한 척하기를 좋아하는 성격 탓인지 이 책은 가톨릭을 비판하다가 칭찬하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가 이 책을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잠시 궁금했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온전히 종교적 수기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세속적이다. 수녀님을 만나면서도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먼저 따지는 공지영이었다. 나처럼 세속적인 사람이 보기에도 그다지 종교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가톨릭에 관한 글을 쓰면서 불교의 스님이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종교가 다 똑같은 것이라는 모호한 결론으로 글을 마무리하는 것을 자주 봤다. 정작 자신이 다시 가톨릭으로 돌아온 계기가 글로 표현되지 않았다. 신앙 수기를 쓰려고 했다면 그 부분에 대한 서술이 구체적이었어야 했다.

이 책은 수기도 기행문도 아닌 모호한 공지영의 일기가 되었다. 한 번의 여행으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책을 발간하기 위해서 무리하게 정리한 결론은 이해할 수 없다. 그 대신 종교적 의미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는데 그게 잘 안되었다고 솔직히 말할 수는 없었을까.

자신에게 친절했던 수도원을 상세하고 좋게 글을 써주고, 불친절했던 수도원을 대충 써 내려간 공지영의 자세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렇게 지나치게 주관적인 평가 글보다 적절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서술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