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정글보다 더 험한 할리우드

‘트로픽 썬더’는 전쟁을 다룬 액션 영화가 아니며, 그렇다고 전쟁의 비윤리를 고발하는 도덕 영화도 아니다. ‘트로픽 썬더’는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다. 이 영화는 베트남전쟁을 다룬 ‘플래툰’이나 ‘지옥의 묵시록’을 풍자하면서 동시에 전쟁 영화에 대한 희극적 비틀기가 담겨있다. 그리고 전쟁영화라는 장르를 넘어서 영화산업 전체를 풍자한다. 벤 스틸러 감독은 영화 ‘쥬랜더’에서 패션산업에 대한 풍자를 적절하게 보여준 바 있다.

정치적 올바름

이 영화는 개봉되기도 전에 사회적 화제가 되었다. 지적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을 반복적으로 영화에 사용해서 이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보이콧 운동이 일어났다. 장애인 인권단체는 ‘트로픽 썬더’가 타인의 감정을 다치게 할 수 있는 언어나 행동을 금지하는 ‘정치적 올바름’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영화 속에서 터그 스피드맨(벤 스틸러)은 심플잭이란 바보 연기 코미디에 출연한 배우다. 터그는 동료 배우인 커크 라자러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바보 연기에 대한 논쟁을 펼치면서 ‘모자란 녀석'(Retard)이란 단어를 반복적으로 쓴다. 정치적 올바름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영화는 흑인 문제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백인인 커크는 피부를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흑인으로 분장한다. 흑인이 볼 때 모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동양인에 대한 조롱도 마약밀매집단에 대한 묘사도 등장한다. 하지만,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쟁은 인종이 아닌 지적 장애인 문제에서 제기되었다.

정치적 올바름과 표현의 자유가 충돌하는 지점은 미묘하다. 이런 판단을 할 때는 반드시 전체 영화 맥락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인권단체의 대표자가 NPR과 한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그 단어를 사용한 부분만 보았다고 한다. 그 대표자가 전체 영화도 보지 않고 보이콧 운동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이 경우는 영화에 대한 보이콧 운동단체가 주장은 한계가 있다. 영화를 보고 판단하자니 그 영화를 팔아주는 꼴이 되어서 싫고, 그렇다고 영화를 보지도 않고 반대하는 것도 궁색한 상황이 된다. 정치적 올바름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잣대를 모든 영화에 기계적으로 들이대는 것도 문제다.

이런 논쟁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1억1천만 달러를 번 대작 영화가 되었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불편하게 느꼈다면 이렇게 흥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풍자하는 집단은 바로 영화제작자들이다. 사람 목숨은 관심도 없고 돈만 아는 영화제작자들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할리우드의 정글 법칙

톰 크루즈가 카메오로 연기한 영화 제작사 대표 레스 그로스맨은 권위적이고 안하무인이다. 영화 제작이 연기되자 화상 전화로 감독을 모욕주며 사람을 시켜 때리기까지 한다. 배우가 납치되어도 협상은커녕 좋은 언론 기사가 될거라며 좋아한다. 베트남 정글보다 더 험한 할리우드 제작 현실이 주요 소재이자 주제다. 탐욕스러운 외모로 분장한 제작사 대표는 할리우드 영화판의 최고 권력자다. 특히, 마지막 타이틀이 올라갈 때 톰 크루즈가 감당할 수 없는 몸을 흔들어 대며 춤을 추는 장면은 탐욕 그 자체다.

영화 제작 현장도 전쟁터와 같다. 주연들끼리 자존심 싸움도 벌어지고 영화 촬영이 한 달 넘게 지연되어서 제작비가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쇠락한 왕년 액션 배우 스피드맨은 오스카를 5번이나 탄 커크를 질투하며 시비를 건다. 둘의 갈등으로 영화가 더 진행되지 않자 영화감독은 난감하다. 제작 현장은 점점 통제할 수 없는 난장판이 되어간다.

오스카를 탄 커크의 연기도 풍자의 대상이 된다. 극 중 흑인 캐릭터에 심하게 몰입되어 영화 촬영을 하지 않을 때도 특유의 흑인 억양으로만 말을 한다. 그러면서 마치 자신이 흑인인 양 흑인의 역사를 들먹이며 진짜 흑인 배우의 비난을 사게 된다. 커크는 현실이나 역사에 대한 이해도 없이 캐릭터로 인류애를 표현할 수 있다고 믿고 행동한다. 흑인 분장으로 자신을 흑인으로 여기는 커크는 너무 순진하기 이를 데 없다.

바보 연기로 오스카를 탄 톰 행크스와 숀 펜처럼 자신도 할 수 있다고 믿는 스피드맨은 사실은 잊혀진 액션 배우다. 여전히 최고 배우의 대우를 해주기 바라며 연기가 잘 안 되자 대본을 탓하는 막무가내형 배우다. 쇠락해가는 액션배우의 마지막 자존심이 담겨있는 캐릭터다. 람보의 실베스터 스탤론의 모습이 스피드맨에게 겹쳐진다.

영화 속 영화의 시나리오는 베트남 전쟁영웅의 실화를 기반으로 쓰였지만, 이것도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다. 영화의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서 실제 정글 속에서 촬영을 시작하지만, 근처에 있던 마약밀매조직과 실제 전쟁이 일어난다. 영화 제작은 더욱 난관 속으로 빠져든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전쟁을 치루 듯 영화를 제작해야 하는 현장을 코미디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제작이 끝난 후에도 지적 장애인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며 항의하는 시위대를 만나야 했다. 이것도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다. 이 영화가 풍자하는 영화 제작 사업은 정글 속 전투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트로픽 썬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