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지 못한 제야의 종소리

KBS 특별 생방송 ‘가는해 오는해’의 왜곡방송으로 인터넷이 뜨겁다. 생방송 화면은 보신각 주변 시위 현장은 전혀 다루지 않고, 오세훈 시장에게 쏟아진 야유 소리도 박수 소리로 편집해 방송했다. 한 해를 보내고 정리하는 자리에 나온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줘야 할 방송이 현실을 편집해서 시청자를 속이려 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면 사람들은 단독 중계 방송만 믿고 이런 사실이 있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현장을 생중계하는 방송에서 의도적으로 시위대를 배제할 이유는 없다. 제야의 종 주변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여과 없이 담아야 했다. 타종을 들으러 나온 사람과 정부 정책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나온 사람을 함께 다뤄야 했다. 비록 시위대를 취재하기 위한 방송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현장의 한 부분으로 다룰 의무가 있다. 공영방송 KBS는 특정 정치인에게 퍼부어진 비난을 감출 필요가 없었다. 있는 그대로 내보내지 않고 과도하게 편집한 것은 월권행위이며 명백한 현실 왜곡이다. 이것은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침해다.

방송사고를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테크닉이라는 KBS 제작진의 변명은 ‘방송을 위한 방송’의 논리다. 제야의 방송은 국민을 캐스팅해서 대본대로 연출하는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가는해 오는해를 맞는 시민의 생생한 인터뷰가 중심이다. 그 가운데 훈훈한 이야기도 있고,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의 이야기도 있다. 우울한 이야기 때문에 방송이 조금 칙칙해지더라도 그걸 방송사고로 봐서는 안 된다. 방송사고를 막고 깔끔하게 편집된 거짓 행복을 보여준다고 한 해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다. 마치 의사가 암 환자에게 진통제를 놔주며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번 사태에 관해 KBS는 반드시 해명해야 한다. 일개 PD의 편집권이 문제였는지 경영진의 개입이었는지 밝히고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국민은 제야의 방송이 멋지게 보일 수 있도록 장식하는 엑스트라가 아니라 주연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KBS가 정치인 주연 드라마를 찍는 삼류방송으로 전락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번 사태는 언론법 개악의 예고편이다. 겨우 사장 한 명 바뀌었을 뿐인데 방송 태도가 이렇게 달라졌다. 현 정권은 나머지 방송도 자본 권력에게 넘겨주려하고 인터넷 통제까지 넘보고 있다. 사회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걸 고치기 위해서 우선 무슨 문제인지 알아야 한다.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현실을 왜곡하게 되면 사회가 썩어 문드러져도 모르고 웃음 짓는 모순이 일어날 수 있다.

전두환 정권 시절 ‘땡전 뉴스’가 생각나게 하는 사건이다. 아주 멀고 먼 역사의 실수 같지만 역사는 반복된다. 보신각종을 치며 한 해를 정리하는 의례도 사실대로 방송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