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교육

모교에서 동문들에게 발전 후원기금을 내라고 책자를 보냈다. 표지에 쓴 ‘무슨 무슨 교육은 명품’이라는 말을 보고 기분이 팍 상했다. 아무리 요즘 분위기가 대학을 기업의 직업학교로 생각하는 풍토가 있더라도 모교마저 그걸 답습하고 그런 교육을 위해 돈을 내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어떤 인재를 기르겠다는 교육철학은 사라지고 명품이면 다 되는 세상인가. 나는 ‘명품’이란 단어가 참 싫다. 그것도 사람한테 쓸 표현은 아니다. 사람이 무슨 물건인가. 대학이 물건을 찍어내는 공장인가. 나도 사람을 가르치고 배우는 직업에 종사하기 위해 공부하고 있지만 이런 풍토를 접할 때마다 막막하다.

표지에 드러난 문구가 교육철학을 모두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그 안에 담긴 영어 졸업인증제, 기업이 원하는 학생 등으로 드러난 대학교육의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내가 다닐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로 노골적 표현을 쓰지는 않았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소비주의가 심화하는 사회에서 명품교육은 그런 분위기를 대변한다. 학생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사회는 핑크 플로이드의 벽이라는 뮤직비디오 속에서 학생이 소시지가 되는 공장을 연상시킨다.

‘명품’이란 단어가 주는 불편함은 경쟁 신화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마치 경쟁이 최고의 선이고 가치인 양 포장하지만, 명품이 되기 위한 경쟁 자체가 공정하지 못한 현실에는 눈을 감는다. 자본이 풍부한 기업과 기술력은 있지만, 자본이 부족한 기업의 경쟁에서 항상 이기는 쪽은 자본이 많은 기업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애초부터 공정한 경쟁을 기대할 수 없다. 모든 경쟁이 나쁜 건 아니지만 공생, 공존의 가치를 배제한 경쟁만으로 살아가는 사회는 비인간적 몰인정한 사회다. 공공의 영역에 속하는 교육에도 경쟁을 강요하는 명품 논리가 주류가 되는 것은 더불어 사는 건 가르치지 않겠다는 소리다. 그래서 다른 이를 짓밟는 명품은 교육과 어울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