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고민

옷 입는 스타일이 아니라 글 쓰는 스타일이다. 내 글의 문체가 너무 건조한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을 얼마 전부터 하기 시작했는데, 오마이뉴스 편집기자에게 다시 이런 얘기를 들었다. “기자님은 글이 너무 딱딱하고 논문스러우니까 좀 더 재밌게 쓰세요.”

내가 대학원에 들어가서 주로 읽는 글이 사회과학 서적이거나 논문이라서 나도 모르게 물들었나 보다. 앞으로도 그 물이 쉽게 빠지지 않겠지만 목적에 맞게 약간씩 스타일에 변화를 줘보려고 한다. 모든 글이 논문이라면 얼마나 재미없겠나. 블로그 글이라도 부드럽고 재밌게 써봐야지.

블로그 글에도 다양한 스타일이 있다. 어떤 사람은 대화체로 마치 옆에 있는 친구에게 말하듯 쓰기도 한다. 나도 그런 스타일로 글을 써보려고 했지만, 스크린 너머 불특정 다수가 사람으로 도저히 느껴지지 않아서 다시 문어체로 돌아왔다. 내 경우는 댓글은 좀 편하게 대화체가 된다. 처음에는 댓글로 대화하는 방식이 잘 적응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제법 편해졌다. 댓글을 쓴 사람의 얼굴이 연상되기도 한다.

문어체와 구어체를 떠나서 내 글은 아주 짧고 건조한 편이다. 이건 내가 닮고 싶어 하던 작가의 스타일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짧고 핵심을 찌르는 표현방식을 목표로 삼고 글을 써왔다. 돌이켜보니 내 글은 간결하게 쓰기는 하지만 딱히 핵심을 찌르는 표현도 못 되었고 건조하고 딱딱하기만 했다.

소설이나 산문집을 읽으면서 글 쓰는 스타일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어떻게 써야 할까?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걸 담는 그릇도 무시할 수 없다. 내면이나 내용은 무시하고 옷이나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가 되어간다고 비판하지만, 겉모습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멋진 생각이라도 제대로 표현하지 않으면서 그걸 몰라주는 세상 탓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블로그에 쓰는 글만 해도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표현할지 수차례 숙고한다. 이 글에는 어떤 사진이 효과적일까, 블로그 디자인은 어떤 게 좋을지 등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미국 텔레비전 쇼에서 ‘What Not To Wear’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패션 전문가 두 명이 나와서 스타일 구린 사람에게 옷 입는 법을 가르쳐주고 쇼핑하라고 돈도 준다. 쇼에 뽑힌 사람들 자신은 자기가 옷을 잘 입는다고 생각한다. 스타일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쇼가 다루는 사람은 평균적 기준을 심하게 벗어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고급 레스토랑에 가는데 운동복을 걸치고 하얀 양말 위에 샌들을 신는다. 고급 부동산을 중개하는 사람이 쫄면티를 입거나 요가복에 점퍼 차림으로 고객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정도 자기 스타일을 유지하는 좋지만 그게 자기 일에 훼방을 놓는다면 곤란하다.

이 쇼에서 출연자가 과거 스타일의 옷을 버리는 장면은 아주 극적이다. 자신의 일부가 된 옷이나 습관을 버리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나. 눈물을 흘리거나 감정이 폭발해서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변화는 한순간에 이뤄지지 않고 이것은 끊임없는 싸움의 연속이다.

글에 대한 스타일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옷 스타일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옷이나 글이나 자신의 표현하는 도구다. 도구에 휘둘릴 필요는 없지만 잘 활용하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잘생긴 외모를 타고난 배우가 그 외모 치장에만 관심을 둔다면 문제지만 외모를 바탕으로 연기까지 잘해준다면 뛰어난 배우로 거듭날 수 있다.

내 문체를 바꿀 노력은 하게 되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하루아침에 디씨갤에서 쓰는 표현으로 이 블로그를 채우지는 않을 것이다. 내게는 변화를 도와줄 전문가도 없다. 영어권에 살다 보니 자꾸만 늘어가는 영어식 표현도 문제다. 변화와 개선에 대한 욕구만 강하지만 그 방법은 아직도 찾고 있다.

이 블로그를 어떤 내용으로 채울까 하는 고민보다 심하지는 않겠지만 글의 스타일도 만만찮은 도전이다.  소설가 박민규처럼 엉뚱하고 독특한 스타일은 내한테 맞지 않을까. 요즘에는 이외수 같은 기인처럼 한번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진지하기만 하고 별 재미가 없는 나의 글에 이것저것 실험을 해보고 싶다.

바꾸고 싶은 게 있는가 하면 바꾸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 내 글이 추구하는 목표로 하나만 꼽자면 ‘솔직함’이다. 가능한 가식 없이 위선같은 걸로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터놓고 쓰려고 한다. 이게 내 신조이기도 하고 그걸 버릴 생각은 없다. 지나친 격식이나 딱딱함은 더 버려야 솔직하고 정직함에 더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

이런 변화가 고민만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폭넓게 읽고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 굳어버린 나의 문체를 누그러뜨리고 새것을 받아들이는 건 마치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얼음을 지치는 피겨스케이터처럼 신나면서도 두려운 심정이다. 마음껏 놀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얇은 두께의 빙판마저 녹아버리는 건 아닐지.

글과 연구로 먹고사는 직업에 몸담은 지 꽤 되었다. 제2, 제3의 도약의 필요한 시기라서 정체되지 않으려 발악 한번 해본다. 글 잘 쓰는 사람이 부러워서 나도 글 쓰기 실력을 키워볼 요량으로 시작한 것이 블로그였다. 볼슬레이로 비유하자면 이제 썰매에 올라타는 법은 배웠다고 할까. 중력을 이기는 법, 코너를 도는 법, 뒤집어지지 않기 위해 균형을 유지하는 법, 브레이크를 잡는 법 등 배워야 할 게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