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이 위협하는 공유 문화

한국에서 전자책은 그다지 인기가 없는 편이지만 미국의 전자책 시장은 꽤 흥행하고 있다. 아마존 킨들이나 소니 리더 같은 상품이 잘 팔려나가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상업 전자책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편하게 책을 읽고 문화 소양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까. 지금 상황으로 판단할 때 회의적이다.

책에 얽힌 아주 어린 시절 기억은 주로 빌려 읽으면서 만들어졌다. 초등학교 때 책꽂이 몇 개뿐인 정말 보잘것없는 학교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에 대한 추억이 있다. 삼중당 문고였는지 일신각이였는지 정확한 출판사는 기억나지 않는다. 세계문학 시리즈는 나의 문학적 상상력을 키우는 자양분이 되었다. 그 당시는 변변한 공공도서관도 없었던 시절이라서 그거라도 귀한 책이었다. 더 나이가 들어서 추리소설에 관심을 끌게 되면서 홈스나 포와르류의 소설을 친구들에게 빌려 보았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책을 사서 보는 횟수가 늘어났지만,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책이 더 많았다.

도서관이나 친구들에게 빌려 읽는 문화가 없었더라면, 나의 문화적 소양은 극도로 쪼그라들었을 것이다. 서로 돌려가며 읽으면 나중에 모여서 토론할 기회도 있다. 책의 상업문화만 존재하고 공유문화를 철저히 금지했다면 이런 자유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상업문화와 공유문화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할 수 있으려면 좋겠지만, 자본주의 발전은 상업영역만 과도하게 늘려버렸다. ‘공유는 상업화에 적’이라는 인식을 상식으로 만들었다.

인터넷하면 공유의 문화가 생각나지만, 초기의 공유의 가능성은 골방 수준으로 오그라들었다. 디지털 저작권법이 이미 사업자 위주로 형성되어 있고 소비자의 권리는 아날로그 시절보다 못하다. 종이책을 사면 온전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지만, 전자책은 소유권이 아니라 접속권만 내어준다. 아마존에서 산 책은 내 킨들로만 읽어야 하며 친구에게 빌려줄 수도 없다. 그리고 이렇게 내려받은 책은 읽고 나서 헌책방에 내다 팔 수도 없다. 독자가 주장할 수 있는 권리란 오로지 인터넷 서점에 돈을 주고 접근할 수 있는 권리뿐이다. 세상에 전자책만 존재하고 지금처럼 디지털 저작권이 짜여 있다면 도서관의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 인터넷 서점이 도서관을 대체하게 될 거고 그건 모두 돈을 주고 사서 접근할 수밖에 없다.

돈만 있다면 편리하게 서점에서 금방 내려받아 그 자리에서 바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돈이 풍족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자책은 그림 속의 떡에 불과하다. 도서관마저 사라진다면 이들이 얻을 수 있는 문화적 혜택은 완전히 사라진다. 나의 어린 시절 추억처럼 책이 많은 친구에게 전자책을 빌리는 건 전설처럼 여겨질 거다.

전자책의 유행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적 산물의 발전이 아니다. 책 공유문화를 위협하는 상업문화의 팽창이다. 대출과 공유의 기능을 제외한 전자책의 출현은 문화의 민주적 향유를 심각하게 방해한다.

킨들의 세련되고 편리한 기능에 혹해서 한번 사보려고 마음먹다가도 그 속에 깔린 상업 정신을 생각하면 마음껏 동참할 수 없다. 전자책이 성공해서 상업 시장이 형성되어도 저절로 공유문화가 생기는 건 아니다. 오히려 공유하지 못하고 사서 보게 하려는 기술과 법적 수단이 동원될 게 뻔하다. 도서관과 구글 연대가 추진하는 전자책 계획도 추진되고 있지만, 상업진영에 적수가 못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승부는 돈이 결정한다. 단기간 안에 25만 권이 넘는 전자책을 그것도 독자들이 가장 읽고 싶어 하는 신간과 베스트셀러로 확보한 아마존의 힘은 돈에서 나온다.

종이책 시절에 비교해서 독자의 권리가 많이 후퇴한 전자책, 이제는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철저하게 개인들을 소외시키고 쪼개서 전자책을 판매하고 공유를 금지하는 상업문화는 문화발전에 해가 된다. 민주적 소통과 문화발전을 막는 전자책 기술을 사회적으로 논의해보자. 과연 이대로 좋은가. 책 산업도 돈이 되어야 하겠지만, 최소한 숨통은 틔워주고 사업을 해야 한다.

책은 일반상품과 달리 문화상품이다. 문화발전에 기여할 여지는 남겨두고 장사를 해야 한다. 지금의 상업 전자책 기술이 공유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문화 발전을 아랑곳하지 않고 돈만 밝히려는 방향으로 향해간다면 지나치게 책 문화 자체를 고사시킬 수도 있다. 한국에서 전자책 기술 논의는 빠른 감이 있으나 곧 닥쳐올 기술이니 미리 준비해서 나쁠 건 없다. 전자책은 새로운 시대의 산물로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고 있다. 전자책 기술이 문화발전을 돕는 공유와 상업성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