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음식 잡지의 변화

미국 경제가 바닥을 모르게 추락하고 있고, 그에 따라 광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잡지시장도 사정이 안 좋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국의 음식 잡지만은 조금 예외인 거 같다. 서점의 잡지 판매대에서 바라본 풍경은 아주 풍성해졌다. 오히려 잡지의 수도 늘어나고 다양해졌다. 예전에 음식 잡지 하면 ‘고메이 매거진’, ‘본 아페티’, ‘푸드 앤 와인’이 전부였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음식 잡지 시장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스타 요리사들이 한둘씩 자신의 이름을 건 잡지를 창간했다. 30분 요리의 ‘레이첼 레이’, 남부 조지아주 사바나 출신 구수한 할머니 ‘폴라 딘’, 집에서 식당처럼 분위기를 낸 요리 전문인 세미-홈메이드의 ‘샌드라 리’, 영국의 네이키드 쉐프 ‘제이미 올리버’까지 모두 자신의 이름을 건 잡지로 대중과 만난다. 여기에다 미국 최대의 요리 케이블 방송사 푸드네트워크도 잡지를 최근에 창간했다. 심지어 음식의 강국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잡지도 미국판 잡지를 발간했다. 너무 다양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지만 독자들은 선택의 자유가 늘어나서 행복하다.

아무리 경제위기가 닥치더라도 사치품은 줄여도 음식은 안 먹을 수 없는 법이다. 그리고 외식은 줄이게 되면 집에서 해 먹는 음식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요리를 배우려면 잡지만 한 매체가 없다. 똑같은 요리에 질린 사람들에게 매달 새로운 요리법을 알려주는 음식 잡지는 해방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음식 잡지는 경제를 그나마 덜 타는 게 아닐까.

음식에 대한 관심이 점점 늘어나는 것도 한몫했다. 근대 이전에는 귀족이나 즐기던 레스토랑 음식이 이제는 중산층이나 서민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식당을 돌아다니면서 평을 하는 블로그도 늘어나고 있다. 요리법을 올리는 블로그는 연예인이나 다름없는 세상이 되었다. 음식에 대한 대중의 수요가 늘어나니 자연히 음식 잡지가 성장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며칠 전에 서점에서 우연히 치즈 잡지도 접하게 되었다. 포도주나 맥주를 다루는 잡지는 자주 봤지만, 치즈 잡지는 처음이었다. 음식잡지의 전문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이탈리아 요리, 치즈, 프랑스 요리, 특정 요리사의 전문 분야 등 세부적 분야를 다룬 음식 잡지가 늘어나고 있었다. 한국에서 먹어 본 치즈라곤 빵에 끼워 먹는 슬라이스 체더치즈가 전부였는데 미국에 와서 치즈 판매대에 무수히 쌓인 치즈를 보면서 상당한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 치즈를 먹는 문화가 발달한 서구 사회에서 치즈 잡지가 다룰 수 있는 영역은 무궁무진할 것 같다.

이런 음식 잡지 가운데 일부 잡지가 관심을 가지는 화제는 바로 환경문제와 친환경 유기농이다. 특히, 요리사들이 발행하는 잡지를 중심으로 지역 농산물을 소비하자는 운동을 펼치는 잡지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무래도 요리사는 음식업 종사자로서 평소에 그런 문제를 평소에 고민하는 정도가 음식 산업의 경영인보다는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음식 윤리가 자신의 지역이나 나라에 한정되어 있어 약간 아쉽다. 지구의 한편에서는 경제위기로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넘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남는 음식을 처치 못 해서 버리고 있다고 한다. 기아 문제를 음식 잡지들이 지속해서 관심을 두면 어떨까.

다양화되고 전문화되는 미국의 음식 잡지 속에서 단순히 음식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음식 잡지가 맛있고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즐기는 것과 더불어 배고픔의 문제도 고민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 파동이나 살모넬라균에 오염된 시금치, 땅콩버터 등 음식 안전도 무시할 수 없다. 요리법뿐 아니라 어떻게 음식이 생산되고 관리되는 걸 점점 알 수 없게 된 현대사회에서 음식 잡지가 윤리적 감시기능을 해줄 수 있을까. 전문화된 음식 잡지가 윤리나 위험에 상관없이 아무거나 먹으라고 권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도 아니니까. 전문화되는 음식 잡지 속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은 음식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과제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