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회사의 사막 속에 피어난 오아시스

천지애(김남주)와 온달수(오지호)는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 낙오자 부부다. 드라마 ‘내조의 여왕’은 팍팍한 경쟁 사회 속에서 실패자가 살아남는 법을 보여주고 있다. 온달수의 삶이 처음부터 꼬인 건 아니었다. 그는 서울대에 들어갈 정도로 뛰어난 머리를 가졌지만, 학교생활에 적응도 못 했다. 그리고 그는 사회성도 떨어지는 데다 고지식하게 원칙만 고집하다가 회사에서도 쫓겨난다. 천지애는 학창 시절에 미모로 남학생의 인기를 독차지했지만, 지금은 백수의 아내로 살기 위해 짝퉁 명품 제품이나 만들며 살고 있다. 본격적인 사회생활 이전에는 꽤 잘 나갔던 부부였지만 현재는 고달프게 살고 있다. 예사롭지 않은 이 부부의 고된 삶이 남 일 같지 않게 보이는 사람들도 꽤 될 것이다.

실업자가 점점 늘어나는 경제위기 속에서 이 드라마가 보여준 온달수와 천지애는 예외적 부부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남다른 의지로 역경을 악착같이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이 드라마의 초반부는 천지애가 회사 부인회의 빽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남편을 취직시키려는 눈물겨운 아부가 등장한다. 천지애는 아부의 달인은 아니지만 먹고살기 위해 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천지애는 어리숙하고 속이기 쉬운 성격 탓에 예전 친구 양봉순(이혜영)에게 자꾸 당하기만 한다. 그래서 천지애의 아부가 마냥 미워할 수 없었고 충분히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다. 천지애는 남편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게임에서 뒤처지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온달수가 천지애 뜻대로 그냥 성공하는 이야기로 전개되었다면 지극히 상투적 드라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온달수가 아내의 도움으로 경쟁에서 성공하며 출세하는 드라마가 아니라서 새롭고 흥미진진하다. 실패와 성공이 교차하는 온달수의 회사 생활은 현실의 직장인과 비슷하다. 융통성이라곤 발톱의 때만큼도 없는 온달수가 퀸즈푸드 같은 대기업에서 성공할 확률은 지극히 낮다. 온달수는 처세술의 달인 한준혁(최철호) 부장이 생각할 때는 형편없는 놈이다. 한 부장은 자신의 첫사랑 천지애가 이렇게 한심한 놈이랑 결혼해서 산다는 게 못마땅하다.

‘사회생활’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는 한 부장과 그런 거 모르고 살아온 온달수는 사사건건 부딪치게 된다. 온달수는 ‘사회화’가 덜된 인물이라서 만날 놀림감이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런 ‘사회생활’에서 자유로운 영혼이라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온달수처럼 마음대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겠나. 다들 가족을 위해서 참고 사는 거 아닌가. 한 부장과 온달수의 대립만 이어진다면 심심할 수 있었을 상황에서 새로운 변수가 등장한다. 바로 회사 세계의 초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재벌 2세 사장 허태준(윤상현)이다. 그는 사회생활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신적 존재다. 이미 회사의 최상층에 살고 있는 허 사장에게 아랫동네 정치는 먼 동네 일이다.

허태준 혹은 허태봉은 천하의 망나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국 사회에서 보기 드물게 개념을 탑재한 인물이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회사 중역이 아닌 신입사원의 월급을 줄이는 거꾸로 된 세상에서 허태봉은 자신의 월급부터 동결하겠다고 말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사장이란 말인가. 이런 CEO가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있겠나. 역시 드라마니까 가능한 환상의 사장이며, 그동안 드라마에서도 보기 드문 캐릭터였다.

퀸즈푸드란 회사 속에서 꼬이고 꼬인 인간관계의 미로는 이 드라마의 핵심이 되는 배경이다. 회사는 누구에게는 끔찍한 지옥 같은 공간이겠지만, 누구에게는 무궁한 기회의 공간이 될 수도 있다. 퀸즈푸드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들이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 정글 같은 회사의 인간관계에 신물이 난 허태봉이 자유로운 천지애에게 끌리는 건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허태봉의 아내 은소현(선우선)은 따뜻한 인간관계가 그립다. 그녀는 돈과 권력에 굶주린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메말라가며 진정한 인간애를 느낄 수 없었다. 학창 시절 첫사랑 온달수의 따뜻한 마음이 정글의 인간들과 달라 보이는 건 자연스럽다. 모든 걸 다 가진 사장 부부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신입사원 부부에게 각각 빠져드는 이야기는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진정한 인간애가 결핍된 현대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어쩔 수 없이 백수가 되어 사회생활 바깥에 머무르다 보니 온달수와 천지애는 사회생활에 덜 때 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도 언제고 사회의 핵심으로 들어와서 변할 수 있다. 이 드라마 속에 첫사랑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때 묻지 않는 관계에 대한 상징이다. 유부녀와 유부남이 애틋한 첫사랑의 감정을 품을 수 있다는 건 순수한 관계에 대한 갈망을 뜻한다. 하지만 사회생활 속으로 들어온 때 묻은 마음은 이미 사회생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만약에 그 선을 넘는다고 해도 이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없다. 마치 낙원에서 떨어진 인간이 그 시절을 그리워만 하는 심정이지 다시 승천할 수 없다. 이미 몸도 마음도 너무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퀸즈푸드 회사원이라면 동경하는 아파트 퀸즈펠리스는 또 다른 조직이다. 펜트하우스에 사는 사장 부부처럼 상승하고 싶은 욕망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회사 단합대회나 김장철이면 부산하게 상사에게 달려가는 이들의 속도는 엘리베이터 상승 속도를 능가한다. 이사의 부인 생일날 노래방에서 모여서 “당신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연발하는 부하직원 부인들은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한다. 상사의 부인에 대한 아부의 극치를 보여주면서 천지애의 변신이 엿보이는 장면이다.

이해관계를 벗어난 첫사랑 같은 순수한 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능한 게 회사생활이다. 회사 직책에 따라서 아내들의 위계서열이 정해지고 심지어 아이들도 그런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회사원은 조직의 피라미드를 타고 올라가려고 악착같이 서로를 짓밟고 필요에 따라서 상사의 비위도 맞춰준다. 본격화되는 정치싸움에서 배신과 동맹을 거듭하면서 온달수가 변신하게 될까. 회사인으로 거듭나도록 돕는 천지애의 활약이 돋보일까. 아니면, 회사에도 따뜻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동화적 상상력을 발휘하게 될까. 후반부 드라마 전개가 어떻게 될지 무척 궁금하게 한다.

정글 같은 회사 속의 인간관계를 풍자하는 ‘내조의 여왕’은 통쾌하면서 유쾌하다. 온달수와 천지애는 말할 것도 없고 인간미가 전혀 없을 것 같은 한 부장도 자꾸 넘어지고 아무데서 침을 흘리는 보통사람이다. 이 드라마는 결국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여서 서로를 괴롭히게 되는 사회라는 걸 현실성 있게 잘 전달한다. 삭막한 경쟁사회 속에 살고 있는 이들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도 그 안에서 적응하며 부대끼며 살다 보니 그리 된 것이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나쁘게 짜여 있는 경쟁구조다. 드라마를 보며 이렇게 웃고 떠들며 공감하긴 정말 오랜만이다.